40개의 비디오 테이프
작가는 본인의 존재 이전에 있던 과거의 이미지를 수집하고 물끄러미 바라보는 것을 좋아한다. 예를 들면 새로 이사 온 동네의 아무도 사용하지 않는 유휴 공간 혹은 길을 걷다 우연히 발견된 버려진 물건에게 알 수 없는 애착을 느낀다. 이것을 바라보고 있을 때 작가는 바쁘게 흘러가는 일상속에서 잠시 다른 시공간에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되고 위로를 얻는다.
전시의 제목인 〈40 tapes〉는 이번 작업의 시작이 작가의 부모님이 남긴 40개의 8mm 테이프를 통해 시작하게 되었음을 내포하고 있다. 찬란한 과거의 순간이 담긴 테이프가 먼지 쌓인 이사박스에 방치되어 있었고, 그 순간은 테이프 속에 존재하고 있지만 사람의 손길이 끊긴 나머지 죽음을 맞이했다고 생각했다. 작가는 어린 시절 버려진 물건을 주워 분해하고 다시 조립하시던 할아버지를 떠올렸다. 물건들은 엉성하고 볼품없는 모습으로 재조립되었지만 사용에 문제는 없었다. 가족들은 이를 쓸모없는 일이라 여겼음에도 할아버지는 꿋꿋하게 물건들을 주워오시곤 했다. 시간이 흘러 할아버지의 죽음을 겪게 되었을 때, 그 행동에서 사랑을 발견할 수 있었다.
할아버지의 서투른 사랑처럼 작가는 혼자서 기능할 수 없는 과거의 것에 시선을 보내고, 장식적인 변형을 가해 개개인이 가진 역사를 재 기능하게 한다. 이러한 변형의 과정에는 멈추어버린 순간을 기록하고 수집하는 행위 또한 수반된다. 미처 흐르지 못한 채 그 자리에 머물러 있는 기억을 발견하는 동시에 계속해서 과거가 되어가는 현재를 붙잡는 두 가지 태도를 제시해 상실되는 순간들을 영원히 간직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