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지수는 이미지와 생산자와의 관계를 도구적 관계로 재설정하여 관성적으로 행하는 그리기에 물음을 던진다. 어떤 현상을 경유한 경험에서 출발하여 특정 장면으로 디지털 이미지를 구상한 뒤, 회화로 충실하게 담아낸다. 스스로 설정한 일련의 과정을 충실히 행할 뿐, 그 과정 속에서 작가로서의 지위는 점점 지워진다. 작업 과정 속에서 작가는 생산 도구를 자처하는 것이다.
특히 회화에서의 ‘그리기’와 ‘이미지’ 사이의 연약하지만 떼어낼 수 없는 관계에 주목한다. 관성적인 그리기의 행위를 최대한 배제한 채 마스킹 처리 후 미세한 붓으로 찍어내는 방식을 통해 캔버스의 표면에 피부와 같이 그저 얇게 부착된 물리적인 물질을 남긴다. 이는 회화에서의 필연적인 물질성을 완전히 떼어낼 수 없음에도 감추고자 하는 것에 있다. 회화적 재료에서의 붓질은 고유의 물리적 흔적으로 남는다. 그러나 미세한 터치를 반복하며 점을 찍어내듯 이미지를 조심히 쌓아가는 과정은 적극적인 수행을 통해 오히려 신체성을 지우려는 제스처가 된다. 얄팍하지만 착실하게 쌓인 이미지는 디지털의 픽셀이나 망점과 다르게 표면에 시각적 촉각성을 만들어낸다.
디지털을 회화로 구현하는 과정에서 마스킹에도 순서가 생겨나며 레이어가 발생한다. 그러나 레이어 또한 그려내는 과정에서는 존재했으나 그림을 완성하는 순간 사라진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완결된 화면은 철저한 레시피를 지켜 완성된 요리 같은 인상을 건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