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께 들소를 봤어. 어제는 강아지, 오늘은 당신.

김동우

끝으로부터 오늘을 상상하는 거야. 뭔 말도 안되는 소리를 하고 있어. 오늘은 미래야? 과거야? 오늘을 오늘이지. 잘 이해가 안되면 일단 뭐가 끝인지 정해보자. 그래. 누가? 당연히 너지. 내 생각에는 2 번 아니면 3 번. 그리고 26 번 때때로 11 번까지? 틀렸어. 뭐가 틀려 나보고 정하라며. 그래도 틀린 건 틀린 거야. 정답이 뭔데? 끝은 그냥 끝이지 뭐. 괜히 네가 그렇게 말하니까 이것저것 별생각이 다 들어서 그래! 생각이 없는 것보다야 낫잖아. 그건 그렇지. 그래서? 오늘은 오늘이고 끝은 끝이면. 무얼 상상하냐고? 상상도 그냥 상상이라는 소리 같은 거 할 거면 닥쳐. 상상은 오늘부터 출발하는 모든 거야. 미래든 과거든. 남산 타워처럼 불쑥 나타나서 한 방향으로 푹 찌르고 가는 거지. 세상에나.

고대 그리스 신화에서 조각가 피그말리온은 자신의 조각상을 너무나도 사랑한 나머지 조각을 사람으로 만들어 달라고 소원을 빈다. 간절한 그의 소원에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는 조각상을 사람으로 만들어 주고, 피그말리온은 사랑하는 그녀에게 ‘갈라테아하얀 여인’라는 이름을 붙인다. 그리고 오늘날에는 ‘모에 의인화(萌え擬人化) ’라는 단어가 있다. 이는 인격이 없는 대상에 갖가지 신체적 특성을 부여하여 대상에 인격을 부여하고자 하는 것을 뜻하는데, ‘모에(萌え)’라는 코드가 대상에 대한 애정에 기반한다는 점을 미루어 보면 모에 의인화와 피그말리온의 이야기는 상당히 유사하다. 그럼 한 발짝 더 나아가서, 등신대는 뭐지?

저는 프로그래머이신 아버지께 영향을 많이 받은 편이에요. 어렸을 때부터 게임이나 애니메이션 같은 걸 남들보다 많이 접하게 된 것도 전부 아버지 영향이죠. 어느 날 저와 동생, 아버지 셋이서프리 메이플을 했던 게 기억이 나요. 그때 느꼈거든요. , 화면에 보이는 건 뭐든지 다 조작할 수 있는 거구나. 아버지께 슬쩍자쿰의 투구를 갖고 싶다고 했을 때 어떤 프로그램을 건드리는지 다 봐버린 탓이죠. 어쨌든 이런 류의 일들이 제 내밀한 추억 속에 자리 잡고 있어요. 그러니까대충 그런 거죠, 뭐가 리얼이고 뭐가 리얼이 아니고 같은 것들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끊임없이 지속될 것만 같은 오늘이 나중에 어떻게 기억될지가 더 중요하다.

그저께 들소를 봤어. 어제는 강아지, 오늘은 당신.

김동우

「메두사를 마주친 핑크 갈라테아」, 2023, 아이소핑크 스티로폼 위에 흑연, 펜, 오일 파스텔, 스프레이, 스티커, 173.4 x 112 x 48cm
「메두사를 마주친 핑크 갈라테아」, 2023, 아이소핑크 스티로폼 위에 흑연, 펜, 오일 파스텔, 스프레이, 스티커, 173.4 x 112 x 48cm
「메두사를 마주친 핑크 갈라테아」, 2023, 아이소핑크 스티로폼 위에 흑연, 펜, 오일 파스텔, 스프레이, 스티커, 173.4 x 112 x 48cm
「메두사를 마주친 핑크 갈라테아」, 2023, 아이소핑크 스티로폼 위에 흑연, 펜, 오일 파스텔, 스프레이, 스티커, 173.4 x 112 x 48cm
「메두사를 마주친 핑크 갈라테아」, 2023, 아이소핑크 스티로폼 위에 흑연, 펜, 오일 파스텔, 스프레이, 스티커, 173.4 x 112 x 48cm
「메두사를 마주친 핑크 갈라테아」, 2023, 아이소핑크 스티로폼 위에 흑연, 펜, 오일 파스텔, 스프레이, 스티커, 173.4 x 112 x 48cm
「메두사를 마주친 핑크 갈라테아」, 2023, 아이소핑크 스티로폼 위에 흑연, 펜, 오일 파스텔, 스프레이, 스티커, 173.4 x 112 x 48cm
「메두사를 마주친 핑크 갈라테아」, 2023, 아이소핑크 스티로폼 위에 흑연, 펜, 오일 파스텔, 스프레이, 스티커, 173.4 x 112 x 48c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