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뜬 장님, 시력이 아무리 좋으면 뭐해, 보기만 하지 생각은 안 하잖아.” 무엇을 어떤 목적으로 어떻게 보고 있는 건지 혼란스러웠을 때가 있었다. 이미지를 어떻게 수용하고 있는가에 대해 중점을 가지며 이미지를 보는 방식에 집중하였고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왜 이미지를 찾으려 하는 것인가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 질문을 하면서 그림자처럼 느껴지고 있는 깊은 불안이 나를 건드렸고 그것의 근원을 찾게 되었다. 이유 없이 하게 되는 행동들을 잉여 행동이라고 정의하고 이 행동을 반복한다. 잉여행동은 긴장감을 해소하기 위한 메뉴얼 중 하나이다. 이 긴장감은 자극을 받을 때 생겨나는 스트레스와 그 외 불편한 감정들을 소모하고 남겨진 잔여물들의 배설물이다. 일종의 긴장감을 풀기 위한 행동들은 결과적으로 불안감을 해소하려고 하는 미미한 발악이고 그것을 어찌 됐든 싫어한다. 이런 불안은 어떠한 자극과 비례하여 찾아온다. 인간은 기다림의 존재이다. 방금 그 행동이 누군가에게 어떻게 보일지, 어떤 반응을 일으키고 있을지, 나의 몸짓들, 내뱉는 언어들에 대해 끊임없이 의미를 부여받길 기다리고 있다. 이 기다림이 길어지면 우리의 불안도 비례하여 커진다. 의미가 부여되길 기다리며 살아간다. Short form과 같은 인터넷 매체에서 우리의 기다림은 요구되지 않는다. 누군가 만들어낸 의미를 우리는 그저 바라보고 있으면 되기 때문에 어쩌면 나도 그런 일회성 편안함에 중독되어 버린 걸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이런 인터넷 매체를 탓하면서 나의 불안을 합리화하며 무책임한 태도로만 관조할 수 없다. 나는 불안을 견디는 방식을 탐구하고, 자발적인 ‘수행’을 통해 앞서 말한 긴장감을 해소하기 위한 잉여 행동들과 같은 무의미를 재규정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