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정차합니다)
생동하는 도시의 한구석에서 매일 새로운 가림벽이 세워진다. 머지않아 그 자리에 새로운 빌딩이나 아파트가 들어서겠지만, 그 과정은 잠시 감춰진다. 이는 단순히 공사장을 가리는 역할을 넘어, 그 자체로 하나의 매체가 되어 무언가를 감추는 동시에 보여주기 위한 도구로 활용된다. 가림벽은 일종의 외부 간판이 되며, 그에 부착된 전단지, 티끌 그리고 남은 잔해는 공사가 끝나고 가림벽이 걷히는 순간까지 그 자리에 남겨진다. 이러한 가림벽은 생성과 소멸을 반복하며 살아 숨쉬는 도시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와 관계를 맺는 존재들의 일시성과 그들이 남기는 흔적에 주목한다.
작업은 임시 구조물인 가림벽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어느 순간 세워졌다가 쉽게 사라지는 특징을 지닌 가림벽은 사회 속에서 특정 장소에 잠시 머물다 사라지는 개인의 자취와 닮아 있다.
나는 우리의 기억 속에서 쉬이 휘발되는 존재들을 회화를 통해 변형하고 해체한다. 사실적 묘사와 임파스토, 드로잉을 결합하여 재현과 추상의 경계를 넘나드는 여정을 남긴다. 이는 생성과 소멸의 흐름을 하나의 화면에 흔적으로 공존하게 한다.
또한 각각의 작업에서 가림벽을 조명하는 거리를 다르게 배치하는데, 원경에서 근경으로의 변화를 통해 주목받지 못했던 대상의 자취를 찾아내려 한다. 이는 단순한 시각적 표현을 넘어, 보는 이에게 지나쳤던 순간들과 그 속에서 발견되는 흔적으로 존재의 가치를 이야기한다. 보이는 것 너머의 내면을 마주하는 과정에서 일상의 흔적들은 우리 삶을 재조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