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까만 재가 되길

설윤서

Seol Yunseo

알 수 없는 흔적들과 함께 불타오른다. 그 흔적들은 응어리진 마음속 상처와 잊고 싶은 기억 같은 것들이다. 나의 감정에 솔직해지지 못하고 잊혀진 줄 알았던 억누른 슬픔은 나도 모르는 사이 가슴속 한 켠에 자리 잡아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가 되었고, 그로 인한 내적 변화를 탐구하는 과정에서 작업이 탄생하였다.

작가는 이러한 흔적들을 지우기 위하여 픽션의 인물을 통해 비극을 간접 경험하는 행동을 찾아 나선다. 영화 속 주인공에게 감정 이입하며 동질감을 얻기도, 나의 상황에 대입시켜 감정이 격해지는 상황을 마주하며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작가는 이때 흘린 눈물이 우울감에 빠지게 하는 것이 아닌, 감정을 해소하는 매개체로써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한번 흘린 눈물은 쉽게 사그라들지 않고 마음을 사색하는 시간을 준다. 마치 쉽게 불씨가 꺼지지 않는 불덩어리처럼 말이다.

작가에게 촛대와 재, 불빛은 감정의 소멸과 재탄생을 나타내는 상징적 이미지이다. 촛농이 되어 녹아내린 자리에, 여전히 나를 비추는 수많은 불빛이 남아 있다. 그 불빛들은 내 곁에서 아련히 아른거리며, 내가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힘을 주는 존재들로 자리한다. 소멸된 감정의 잔재 속에서 새로운 감정이 피어나는 것처럼, 이 불빛들은 나를 지탱해 주는 원동력이자, 지나온 시간의 가치와 의미를 되새기게 하는 소중한 빛이다.

작품을 통하여 관객에게 자신의 감정을 마주하고 치유를 경험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고자 한다. 또한 눈물로 녹아내린 순수한 마음에 행복한 감정으로 다시금 자리하길 바라며, 눈물이 촛농이 되어 녹아내리길, 우리의 곁에 수많은 빛이 비쳐주고 있음을 기억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