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지의 요지
나의 작업은 잘 정돈되고 다듬어진 상품과 화려한 이미지를 만들기 위한 숨겨진 노동은 무엇이 있는지에 대해 탐구한다. 이들은 거대하게 동하는 사회구조 속에서 감추어진 조금 더 본질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음에도, 이들의 행위는 너무나 사소하고도 일상적으로 취급되기 때문에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고 가려진다. 나는 퍼포먼스와 대화록을 통해 작가가 독창적이고 유일무이한 작업을 창조해 낸다는 측면에서 한발 물러나 작업을 가능하게 하는 사람들을 드러내고, 위치를 전환하고자 한다. 전시장에 사람이 많이 오면 올수록, 즉 작가의 명성이 높아질수록 관람객을 위한 이쑤시개를 만들어야 하는 퍼포머의 노동의 강도는 높아지고 이쑤시개가 ‘선물’을 통해 계속 없어지기에 퍼포머가 존재해야만 미술가의 작업이 살아있도록 하는 것이다.
시골에서 사셨던 아버지의 영향 탓에 부모님은 주말마다 밭에 나가 채소와 곡식을 농사지으신다. 그래서인지 우리 집 식탁은 손길이 가득하다. 매주콩을 농사짓고, 매주콩으로 매주를 만든 후 매주를 쑤어 된장을 만들고 비로소 된장찌개가 완성된다. 누군가에게는 평범할지 모르는 된장찌개가 식탁에 올라오기까지는 참 많은 애정과 돌봄의 시간이 필요하다. 어렸을 적부터 가공된 무언가가 만들어지는 방식을 엿보는 건 나에게는 익숙한 일이었다. 그 때문에, 늘 무언가가 만들어지는 방식과 과정을 신비하게 바라보는 태도가 존재한 것이다. 그에 더해, 아티스트 스튜디오에서 공부하며 관찰한, 작가가 아닌 다른 이에 의해 작품이나 전시가 만들어지는 과정과 전시장 안에서 일 하는 사람들에 대한 직•간접적 만남의 경험이 더해져 예술작품이 만들어지는 방식에 대해 탐구한다. 퍼포머가 정성스럽게 제작하는 이쑤시개는 전시장에서 전시되는 예술작품임에도 불구하고 다분히 쓸모없어 보이고 효용성을 가지지 않는 것에 가까워 보인다. 나는 나의 작업에서 이쑤시개가 존재해야만 하는 의미와 기능을 부여하고 전시장을 마치 명품관을 연상케하는 방식으로 무목적성의 목적성을 과장한다.
작업의 과정에서 마주한 사람들과 사소하고 개인적이며 지극히 일상적인 대화를 시도하여 맺는 관계 맺음은 세상과의 소통으로 작용하고, 일상적 재현을 토대로 한 퍼포먼스와 어우러져 전시장에서 작은 균열을 만들어낸다. 그 균열은 그들의 미시 서사를 거대담론 위에 올려놓는다. 그리고 그것은 나의 작업의 본질이자, 보잘것없고 하찮다고 생각되는 사물을 통해 잊힌 하부구조와 지금 여기를 선형적으로 운동하며 바라볼 수 있기는 계기를 촉발시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