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번을 뒤돌아보는 일
미래에 다가올 소멸이나 단절에 대한 인간적인 불안은 나의 현재를 온전히 보낼 수 없게 만든다. 이런 상태를 극복하려는 방법으로서 이미 지나가거나 잃어버린 것들에 대한 흔적을 계속해서 되돌아본다. 확실하고 단단한 것에 자신을 묶어두고 어떻게든 유의미한 삶을 살아가려고 하다 보면 부산물들에 애정을 지니게 된다. 남아있기를 기대했던 순간들, 의미를 부여했던 장면들의 사진이나 기록 같은 부산물을 주워 담다 보면 그 자체로는 의미를 소진한 다른 무언가가 된다. 이것들을 되돌아보는 것, 소유하는 것은 내가 미래와 과거의 사이에 걸쳐진 상태로 만들며 이 과정에서 무엇이 남을지 가늠해 보게 한다.
나의 작업은 사라지는 것에 대한 집착과 이를 붙잡고자 하는 시도를 통해 불안에 대한 감각을 풀어내려 한다. <42:40>와 같은 시리즈는 애정을 쏟던 서사물(영화, 드라마, 애니메이션)의 마지막 장면을 캡처하고 확대하여 픽셀 단위로 해체된 이미지에 다시 형태를 부여한다. 이에 따라 장면이 구체성을 잃는 동시에 새로운 형상으로 태어난다. 따라서 불확실하지만 실재하는 듯한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흐려지면서도 물리적 존재로 남아, 무언가를 보존하려는 시도와 해체하려는 양가적인 욕망이 담긴다.
< Explorer >시리즈는 점토와 크랙이라는 소재를 사용한다. 단단하고 물질적이지만 쉽게 파괴될 수 있는 재료로, 이중적인 상징을 지닌 소재로 기능한다. 마치 오래된 화석이나 박제물처럼 사라진 것을 기념하고자 하는 인류의 노력과 같이 흔적을 캔버스에 붙잡고자 한다.
작품의 각 요소는 형태를 눈으로 따라갈 순 있으나 파악할 수 없는 미완성된 서사로 구성되어 있다. 내가 그리는 것들은 연약한 상징을 내포하거나 소중하게 여겼던 순간을 담은 이미지들이다. 이것들을 나의 곁에 종결되지 않은 채로 붙잡아두며 캔버스와 유화라는 오랜 전통의 재료로 담아내도, 그것 자체로는 영속할 수 없는 법이다. 일련의 행위는 내가 사라질 수밖에 없는 것들을 붙잡고자 하는 동시에, 완벽하지 않은 상태로서 머무르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