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인트 니모 Point Nemo
포인트 니모란 태평양 상의 모든 육지로부터 가장 먼 지점을 계산하여 지정해 둔 특정한 장소다. 라틴어로 ‘아무도 없다nemo’는 의미를 지닌 이곳은 한때 한번 닿으면 다시 돌아올 수 없는 머나먼 죽음의 장소였고, 인간이 고립될 수 있는 가장 외로운 지점으로 통했다. 인터넷과 통신의 발달로 이제는 어디에서나 이곳을 조회할 수 있게 되었지만 여전히 찾는 이들은 많지 않다.
정주지 없음의 감각, 분명 딛고 있는 땅이 있음에도 속할 곳 없다는 역설은 당신을 모든 육지로부터 멀리 멀리, 포인트 니모까지 밀어낸다. 이 여정에는 분노, 각오, 그리움, 인내, 자유처럼 복잡한 감정들이 함께하며 이들을 소화하기 위해서는 모종의 시적인, 초월적인 힘이 동원된다.
여기 ‘나’와 ‘I’, 두 사람이 있다. ‘I’는 어느 전쟁의 징집명령을 피해 ‘나’가 사는 나라로 망명을 떠나왔다. 두 사람은 우연한 ‘접속’을 통해 소통을 시작하게 되고 서로의 모국어가 아닌 영어로 불완전한 대화를 나눈다. 국가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폭력에 동원되길 거부하는 사람, 태어난 고향에 소속감을 가질 수 없는 사람, 하루하루 삶의 범위를 줄여나가는 사람, 미래에 다가올 것만 같은 불행을 털어놓을 곳 없는 이들에게 이러한 접속은 스팸 메시지처럼 미심쩍고 연약하지만, 한편으로 강렬한 위로가 되기도 한다.
이번 작업은 ‘I’의 계정이 유령처럼 사라져버린 후의 시점에서 출발한다. 작품에 이용되는 조개 껍데기의 반짝임, 유리 기물, 장식장의 이미지 등은 역사적 욕망의 대상이었던 동시에 나와 I의 삶에서는 상실되는 것이다. 생존의 문제 앞에 사치스러운 짐이 되는 이미지들은 나의 작업 속 모순이 되어 언캐니를 자아낸다. 영상 작품